- 간병노동자 건강실태 조사 결과 최초 발표...296명 조사, 평균 연령 65세
- 간병인, 사고나 감염 발생 시 대부분 ‘스스로 치료’
- 언어·신체접촉 등 성희롱·성폭력 가해자 90% ‘환자·보호자’
- “개선과제 묻는 질의에 ‘식사할 곳 필요’ 답 많아”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그림자 노동자’ 간병인이 돌봄 노동 중 다치거나 감염병에 노출될 경우, 본인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경험한 비율도 높았고, 주 가해자는 환자나 보호자인 것으로 나타나 이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간병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간병으로 인한 사회 문제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한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운동 기간 ‘간병비 문제’를 해결해 간병 부담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간병의 사전적 의미는 ‘병자나 다친 사람의 곁에서 그를 보살피며 바라지하여 주는 것’이다. 통계청의 표준직업분류상 ‘간병인’은 ‘병원, 요양소, 산업체 및 기타 관련 기관에서 환자를 돌보는 자로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며 제공된 음식물을 환자에게 먹여 주는 일을 수행하는 자’를 말한다.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간병노동자의 건강실태 조사 결과 발표 및 노동인권 보호방안’ 국회 토론회에서 남우근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연구위원은 “간병인은 근로자파견법 상의 파견대상 업무에 포함돼 있지만, 파견법 상의 파견근로계약을 체결하고 노동력을 공급하는 경우는 없어, 노동자로 간주되지 않는다”고 간병인의 허술한 법적 지위를 설명했다.
이번 ‘간병노동자 건강실태 조사’에 참여한 간병인은 296명으로 여성 292명, 남성 4명으로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평균 연령은 65세 이상 70세 미만이 217명으로 76%를 차지해, 간병 인력의 고령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평균 근무 경력은 7년 6개월이고, 평균 근무일은 16일이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간병인 중 최대 근무일이 90일이라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환자를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일이 많은 간병인들은 △허리 △목 △관절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달간 경험한 건강문제’에 대한 질문에 허리·목 통증이 194건(중복 답변)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관절염·관절통증 124건 △불면증 104건 △두통 75건 △위장장애 61건 △알레르기 59건 순으로 나타났다.
현장 증언을 위해 토론회에 참석한 ‘희망간병’ 강원대병원 한영란 분회장은 “80kg이 넘는 편마비 환자를 들었다 휠체어에 앉히며, 어깨 허리 팔 다리가 모두 망가지고 있다”며 “그래도 먹고 살아야하니 일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간병 업무 중 사고나 감염이 발생했다는 응답도 각각 159건(중복 답변), 153건으로 나타났고, 사고나 감염이 발생할 경우 간병인 대부분이 스스로 치료한다고 응답한 경우가 각각 79건, 100건으로 나타났다.
‘희망간병’ 경북대병원 이경순 분회장은 “옴 환자를 돌볼 때는 간병사 1명이 감당하는데, 환자들에게 옴이 전염되는 사례도 많다”며 “간병사들은 힘든 노동으로 몸이 계속 망가지는데, 다쳐도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힘든 환자들은 간병사 스스로 회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병인에게 신체·언어폭력, 성희롱 등 비인격 대우를 하는 주 가해자는 90%가 환자나 환자보호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정수창 연구원은 “응답자 중 절반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으며, 지난 한 달간 병원 또는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며 “식사 공간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특히 직원식당을 사용할 수 없게 해 차별을 체감한다는 응답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이숙진 원장은 “병원에 가면 가장 쉽고 많이 볼 수 있는 간병노동자이지만 이들은 보이지 않는 인력으로, 이들이 다치거나 아플 때 산업재해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고령화에 따라 간병노동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노동”이라며 “근무환경 개선, 인건비 인상, 산재 보상 등 간병노동자가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