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치료하며 폭행당한 보건의료노동자 대부분 ‘그냥 넘긴다’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병의원 등 보건의료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의 2명 중 1명이 최근 1년간 폭언, 폭행, 성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이 2025년 6월 19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보건의료노동자 중 55.7%가 이 같은 폭력 상황을 겪었으며, 특히 피해를 경험한 △간호직은 86.3% △간호조무직 74.1%의 피해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보건의료노조는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이후 폭력 경험률이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제도의 실효성과 기관의 조치가 미흡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폭력 피해를 겪은 이들 중 72%는 아무런 조치 없이 참고 넘겼다고 응답했으며, 93%는 기관으로부터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응답자 대부분은 피해 발생 시 주변에 하소연하거나 내부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노동조합이나 고충처리기구, 법적 절차 등 제도적 대응을 시도한 비율은 2% 내외에 그쳤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를 “의료기관 내외 제도의 실효성 부재”로 평가하며, 노동자들이 사실상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성별·근무형태에 따른 피해 차이도 뚜렷했다. 여성의 폭언·폭행·성폭력 경험률은 각각 59.8%, 12.7%, 8.4%로, 남성보다 2~3배가량 높았다. 또한 교대근무자, 야간전담노동자의 피해율이 통상근무자에 비해 현저히 높아, 인력 부족과 감시 부재가 더 취약한 환경을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기관 차원의 보호조치도 거의 시행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 일시 중단, 휴게시간 부여, 가해자 분리, 유급휴가 제공 등 기본적인 피해자 보호조치에 대해 92.3%~98.9%가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감정노동 보호 매뉴얼 비치 비율도 40%대에 머물렀다.
특히 기관 내 인력이 충분할수록 조치 시행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으며, 업무량이 많고 인력이 부족한 곳일수록 오히려 보호조치가 어려운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관 내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고, 고용노동부 역시 지도감독을 방기하고 있다”며 정부의 방관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개인의 인내에 기대는 현재 시스템은 국가의 무책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가해자는 환자와 대상자가 다수를 차지했고, 보호자에 의한 폭력도 적지 않았다. 이에 노조는 의료기관의 특수성을 반영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개정안과 같은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25년 산별중앙교섭 요구안으로 ‘사용자는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폭언·폭행·괴롭힘 근절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