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형간염, 간수치 정상이어도 바이러스 많으면 조기 치료해야
[현대건강신문=여혜숙 기자] 간수치(ALT)가 임상적으로 정상 범위이거나 뚜렷한 상승이 없는 만성 B형간염 환자라도, 혈액 속에 B형간염 바이러스가 많이 남아 있는 경우, 조기 항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간암 등 주요 임상사건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국내 다기관 연구 결과가 나왔다.
간수치(ALT 알라닌아미노전달효소)는 간손상을 알 수 있는 혈액검사 수치로, 정상이라도 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혈액 속B형간염 바이러스의 양을 나타내는 HBV DNA 검사 수치가 높을수록 간 손상 위험이 증가한다.
만성 B형간염은 생산활동 연령대(30-60대)에서 유병률이 높고, 간암으로 이행될 경우, 고액 의료비 발생 및 조기 사망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매우 높은 질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병자 중 항바이러스 치료를 받고 있는 비율은 약 21%에 불과하다. 이는 현행 건강보험 급여 기준이 ALT 수치 상승 여부에 따라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서울아산병원 임영석 교수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과 대만의 22개 의료기관에서 간수치(ALT)가 임상적으로 정상 또는 경미 상승 범위이면서 혈액 속에 B형간염 바이러스가 많이 남아 있는 734명의 비간경변성 만성 B형감염 환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조기 항바이러스 치료군에서 간암·사망·간부전 등 주요 임상사건 발생률이 경과관찰군보다 약 79% 낮았다. 또한 비용-효과성 분석에서도 조기 치료군은 초기 약제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간암·간부전 등 고비용 합병증을 예방하여 비용-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나라 간암의 61%는 B형간염이 원인이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간암 사망률 19.9명으로 OECD 1위, 특히 경제활동 연령층(15~64세) 암 사망 원인 1위(15.4%)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형간염 환자의 약 75%는 적절한 치료받지 못하고 있으며, 진단 후 치료로 연계되는 비율(linkage-to-care)은 40% 미만에 그친다.
이른바 ‘회색지대(gray zone)’ 환자군은 간수치(AST•ALT)가 정상 범위이거나 바이러스 역가(HBV DNA)가 현행 급여기준(2,000 IU/mL)에 미달하여 치료 대상에서 제외된 환자들이다.
연구팀은 "ALT 수치 상승 여부와는 무관하게 혈액 속에 B형간염 바이러스가 많이 남아 있는 환자에 대한 치료 효과성을 입증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결과에 따라, 진료현장에서는 최신 근거를 기반으로 ALT 수치보다 바이러스 역가 기준으로 치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며, 급여기준 또한 ‘치료 회색지대(grey zone)’를 해소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비용-효과성이 입증된 40대 이상의 중위 역가바이러스 환자의 항바이러스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확대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환자중심의료기술최적화연구사업단(PACEN)이 지원한 ‘만성 B형간염 환자에서 항바이러스제 사용의 최적화 및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급여정책을 위한 근거 생성’(연구책임자: 서울아산병원 임영석 교수)를 바탕으로, PACEN 임상적 가치평가(Appraisal)를 통해 도출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