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급여 신생아 유전자 검사 확산...“규모·실태조차 파악 안 돼”
-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교수 “국가 주도·윤리적 기준 갖춘 선별검사 체계 시급”
- “해외는 다학제 논의로 검사 항목 엄격히 제한”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현재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신생아 유전자 선별검사가 명확한 기준과 관리 체계 없이 확대되면서, 부모와 아이에게 불필요한 불안과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범희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신생아에서 유전 검사의 실태와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신생아 유전 검사 스크리닝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하며 “현재 국내 신생아 유전자 검사는 기형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유전자 검사의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확진을 위한 ‘진단 검사’와, 증상이 없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질환 위험을 확인하는 ‘선별검사(스크리닝)’다.
현재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논의의 핵심은 선별검사다. 우리나라는 건강해 보이는 신생아를 대상으로 60~70여 개의 선천성 대사 이상 및 희귀 유전질환을 대상으로 한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들 질환은 조기 진단 시 식이요법이나 효소 치료 등을 통해 예후를 개선할 수 있어 공공 선별검사로서의 타당성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검사들의 양성률은 약 1만3000명당 1명 수준으로 매우 낮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와 별도로 비급여 신생아 유전자 검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염색체 미세결실·중복을 분석해 자폐, 발달지연, 인지장애 위험을 예측한다는 검사가 건강한 신생아를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러한 검사는 급여 체계 밖에서 이뤄지고 있어 얼마나 많은 신생아가 검사를 받고 있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다”며 “산부인과나 산후조리원에서 충분한 설명 없이 권유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검사 결과에 대한 전문적인 유전 상담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단순한 ‘위험 신호’만으로도 부모가 심각한 불안을 겪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해외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국과 영국, 유럽 국가들은 의학·윤리·법률·유전 상담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컨소시엄을 통해 신생아 선별 유전자 검사 항목을 엄격하게 선정하고 있다.
공통 기준은 △유전자 이상과 질병 발생의 인과관계가 명확할 것 △조기 발견 시 치료나 관리로 삶의 질 개선이 가능할 것 △치료법이 없더라도 치명적이어서 가족의 향후 임신 계획에 중요한 정보가 될 것 등이다.
이 교수는 “해외 선별검사 항목에는 자폐나 정신질환 위험, 인지장애 예측 항목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현재 국내에서 이뤄지는 일부 검사는 국제적 기준과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전 상담 없는 검사는 폭력 될 수 있어”
그는 실제 사례도 소개했다. 산후조리원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검사를 받은 부모가 ‘위험 소견’ 통보를 받고 여러 대형병원을 전전했지만, 결국 아이는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 과정에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치료까지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검사 전·후 충분한 설명과 상담이 없는 유전자 검사는 아이와 가족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립보건연구원과 함께 의학·윤리·법률 전문가가 참여하는 연구팀을 구성해, 검사 항목 선정과 유전 상담 체계를 갖춘 국가 주도 신생아 유전체 선별검사 모델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약 600여 개 유전자를 선별 대상으로 정했으며, 양성률은 100명당 1~2명 수준으로 예측된다. 다만 예산 부족으로 연간 500명 규모의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이미 수십만 명의 신생아가 민간 검사에 노출된 상황에서 국가 사업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며 “신생아 유전자 검사는 규제 완화 대상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신생아 유전체 정보가 평생 건강관리(전주기 관리)로 활용될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하며, 이를 위해 △임신 단계부터 부모에게 충분한 설명과 숙고 기간 제공 △출산 전 자발적 동의 절차 마련 △국가 차원의 데이터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전 상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정부가 예산 확대와 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