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일회용 치료 재료 재사용, 제도는 금지지만 현장은 달라”
[현대건강신문=원주=박현진 기자] 고가·미세 치료재료가 늘어나는 의료 환경 변화 속에서, 일회용 치료재료 재사용 문제가 환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은 현행 제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중구 심평원장은 지난 4일 강원도 원주 심평원 본원에서 열린 출입 전문기자단 간담회에서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일회용 치료재료의 재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불충분한 보상 구조로 인해 재사용 문제가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원장은 “비용이 전혀 보상되지 않거나 정액으로만 보상되는 품목들이 상당수인데, 이들 대부분이 일회용 치료재료”라며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현실과 괴리가 크다”고 지적했다.
최근 복강경 수술, 로봇 수술 등 미세 수술이 확대되면서 치료재료 역시 구조가 복잡하고 고가인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치료재료들이 일반 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통상적인 소독 방식으로는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강 원장은 “미세 수술일수록 사용되는 기구와 치료재료의 종류가 늘고, 수술 후 잔여물 역시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일반 소독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치료재료가 증가하면서 환자 안전 문제가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사례를 언급하며 안전한 ‘치료재료 재처리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 원장은 “미국에서는 고가의 복합 치료재료를 전문 시설에서 완전히 분해한 뒤 고도 소독과 기능 검사를 거쳐 다시 유통한다”며 “이 경우 가격은 30~40% 낮아지고, 의료비 절감과 함께 의료 폐기물 감소, 탄소 배출 저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재처리 체계가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절삭기류(드릴·버·톱 등)와 같이 뼈나 근육에 직접 사용되는 치료재료는 구조상 소독이 까다로워, 국가가 지정한 전문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환자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여 의료기구 관리 문제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강 원장은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수술에서는 다양한 회사의 기구를 사용하는데, 병원이 모든 기구를 구비하기 어려워 업체로부터 대여받는 경우가 많다”며 “문제는 어떤 환자에게 사용됐는지 이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염병 환자나 고위험 환자에게 사용된 기구인지 알 수 없으면, 이후 소독 방식과 사용 여부 판단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이력관리가 안돼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심평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계 부처, 의료계, 산업계와 함께 ‘안전한 치료재료 재처리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으며, 공동 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나서고 있다.
강 원장은 “치료재료 관리와 감염 관리는 결국 법과 제도로 뒷받침돼야 한다”며 “대여 의료기구 이력 관리, 재처리 기준 마련 등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관리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