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전문의 “민감한 건강정보 가명화·익명화 불가능”
시민단체 “개인 건강정보 활용, 국민 의료비 절감에 도움 안돼”
학계 “복지부, 유전 정보 보호 시스템 구축에 소극적”
과학단체 “빅데이터 활용 범위 보다 방식 논의해야”
복지부 “가명 처리 정보 사용·절차·목적 진지하게 토론해야”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정부가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며 높은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여전히 시민단체들은 개인의 건강정보 보호를 위한 보안 대책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7일 보건의료 분야 공공기관의 의료데이터를 정책 연구 등 공공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을 개통한다고 밝혔다.
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이번에 개통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은 의료 데이터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이룬 결과물”이라며 “빅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를 줄이기 위해 데이터에 개인 정보를 분별할 수 없도록 비식별조치를 진행해, 연구자는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폐쇄된 연구공간을 통해서만 빅데이터의 열람과 분석이 가능하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건강정보와 유전정보가 다른 정보와 결합되면 특정인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 가명 정보 활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개인 건강의료 정보 및 유전자 정보에 대한 정보주체 자기결정권 침해 문제와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정부,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놨다.
발표를 맡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건강과대안 이상윤 연구위원은 “개인 정보 보호의 핵심이 되는 비식별화가 효과가 없다는 정설이 학계에서 굳어지고 있다”며 “네이처(Nature)지에서도 건강정보가 특이한 경우 개인을 알아보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발표가 실렸다”고 소개했다.
오병일 정보인권연구소 연구위원도 “인재근 의원이 발의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에는 가명 처리된 개인정보의 폭넓은 상업적 활용을 허용하고 있다”며 “통신, 금융, 의료 등 대기업들 간에 고객 정보를 무한공유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밝힌 정일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건의료 빅데이터 관련 논의가 수 년 째 지지부진해 문제 접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정일영 부연구위원은 “매번 토론회에서 간극을 확인하고 돌아가는데, 지금은 (빅데이터) 활용 범위보다 방식을 논의해야 한다”며 “유전자 분석 등 글로벌 변화를 막을 수 없어, 몇 가지 논의에 함몰되기도 보다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의료정보정책과 오상윤 과장도 “의료정보는 민감해, 이를 활용하기 위해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면서도 “개인에게 동의를 받지 않은 가명 정보를 어떤 절차 목적으로 사용할지 토론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핀란드의 빅데이터 활용 사례를 든 오 과장은 “편익을 위해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며 “기술적 안전성을 확보하고 데이터 제공시 어떤 기준으로 할지,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지 절차를 실제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의료기관·기업의 신뢰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민단체를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전체 의료기관의 95%에 달하는 민간의료기관이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가명 정보가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면 (개인 정보가) 노출될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 사무처장은 “대형 생명보험사, 대형 병원들이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을 하면서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을 떨어뜨리고 외래 진료를 늘리려고 한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진행하고 있는 도중에 불필요한 의료비 증가가 발생하는 모순이 되고 있다”고 정부의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병수 성공회대 교수는 “IRB(의학연구윤리심의위원회)에서 내부 전문가가 (빅데이터 활용시) 과학적 범위를 결정하는 정부 안이 나왔는데, IRB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특히 보건복지부는 2년이란 기간이 있었음에도 유전체 보호를 위한 시스템 마련에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문제에 복지부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며 “사회적으로 논의할 틀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